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야구위원회/역대 총재 (문단 편집) == 총재 대행, 12대~14대 [[박용오]] == ||<-2> '''{{{+1 {{{#fff 12대, 13대, 14대}}}}}}''' || ||<-2><:>[[파일:external/www.newspost.kr/1257868755.jpg|width=250]]|| || {{{#fff 재임기간[br](2611일)}}} ||[[1998년]] [[9월 23일]] ~ [[1998년]] [[11월 27일]] [br][[1998년]] [[12월 8일]] ~ [[2000년]] [[3월 31일]] [br][[2000년]] [[4월 1일]] ~ [[2003년]] [[3월 31일]] [br][[2003년]] [[4월 1일]] ~ [[2005년]] [[11월 25일]]|| '''역대 [[한국야구위원회|KBO]] 총재 중 최장기간 재임자.''' 전 [[두산그룹]], 성지그룹 회장. 1998년 11대 정대철 총재가 비리혐의로 구속당하면서 사임하자 9월 23일 총재 대행으로 취임을 했으나 2달 만에 총재 대행에서 사퇴하였다.[* 과거에는 총재 대행이 없이 모두 정식 총재였지만 이번에는 총재 대행이었기 때문에 12대 총재가 아니었다. ] 그 이유는 당시 [[국민의 정부|정부]]에서 구단주가 총재가 되는 것은 정관에 위배 된다며 압력을 넣었기 때문. 그러나 사퇴한 지 일주일 후인 12월 8일 정식으로 12대 총재로 취임한다. 구단주끼리 돌아가면서 KBO총재를 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그 첫번째 인물.[* 다만 다른 재벌들이 부담을 느꼈는지 계속 고사하면서 3번 연임하다가 이후에는 다시 정치인이 왔다.] 역대 총재에서 박용오가 가장 낫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. 이 시기에 미필 프로야구 선수들의 [[국군체육부대]] 입대가 허용되면서 [[병역비리]] 비율을 낮췄고, 해체 위기에 몰린 [[쌍방울 레이더스]]와 [[해태 타이거즈]]의 매각 문제를 잘 처리해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. 하지만 재임 3년 차인 2000년 초, [[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]]가 결성되자 방송 인터뷰에서 선수협을 비판하면서 "프로야구 따위 없애버린다."고 대놓고 망언을 한 탓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. 그리고 국내 최초 [[돔구장]] 부지가 [[두산타워]] 인근인 구 [[동대문운동장]]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축구계의 어그로를 끈 바도 있다. 2005년 [[11월 25일]] 일신상의 이유로 총재직을 사퇴한다고 했으나, 실은 두산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동생들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역관광당하면서 [[7월 27일]]에 출국금지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검찰의 수사망에 걸렸기 때문이었다. 그 뒤 회삿돈 297억 여원의 [[비자금]]을 조성하고 29억원을 횡령한 혐의[*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횡령.] 등으로 불구속 기소,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, 벌금 80억원을 선고 받았다. 나중에 [[대법원]]까지 끌고 갔지만 결과는 1~3심 모두 같았다. 그 후 성지건설을 인수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[[대침체]]로 인해 사운을 건 용산 재개발 사업이 [[베이퍼웨어]]화되면서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렸고, 설상가상으로 차남 박중원(당시 성지건설 부사장)이 [[주가조작]] 혐의로 구속된 뒤 2009년 7월의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2009년 자택에서 자살했다. 향년 72세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